편의점 간식거리에서 ‘천원의 행복’이 사라져간다
  • 한다원 시사저널e. 기자 (hdw@sisajournal-e.com)
  • 승인 2023.02.06 11:05
  • 호수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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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음료 가격 줄인상에 편의점 먹거리 물가 급등
“편의점의 1000원 미만 제품 비중 10% 불과”

과거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섰던 유통업체들이 최근 가격 인상 주기를 앞당기고 있다. 예전에는 ‘연말’이나 ‘연초’에 가격을 올렸다면 이제는 시시때때로 가격을 올리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원부자재 및 인건비 상승’을 가격 인상 이유로 내세우지만, 식음료 가격 인상은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안기는 요인이 됐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는 107.71(2020년=100)로 전년 대비 5.1% 올랐다. 이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7.5%) 이후 최고치다. 연간 물가상승률은 2019년(0.4%), 2020년(0.5%) 2년 연속 0%대에 머무른 반면, 2021년에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10년 만에 2.5%로 뛰었다. 지난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치솟아 전반적으로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국내 유통업체들이 연초부터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서거나 인상을 예고하면서 편의점 먹거리 물가 역시 급등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마트 모습 ⓒ시사저널 최준필

요즘 편의점은 ‘만원의 행복’

하루가 멀다 하고 장바구니에 부담이 더해지지만, 올해도 유통업체들의 노골적인 가격 인상은 이어지고 있다. 새해부터 가격을 인상했거나 예고한 기업들은 △LG생활건강 △롯데칠성음료 △롯데제과 △매일유업 △남양유업 △빙그레 △동원F&B △동서식품 등이다. 이들 기업은 “원부자재 가격, 인건비, 물류비, 에너지 비용 인상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식음료 가격 인상이 이어지자 편의점에서도 1000원 미만 제품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한때 편의점 매대를 차지하던 500원, 1000원 미만 간식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편의점 업계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500원 미만으로 판매되는 제품은 △미니 멘토스(200원) △츄파춥스 낱개사탕(250원) △하리보 골드바렌 미니(350원) △트윅스 미니 초콜릿(400원) △초코파이 1개(450원) △새콤달콤(500원) △왓따판박이껌(500원) 등에 불과하다.

1000원 미만으로 판매되는 제품도 마이쮸·연양갱·자유시간 같은 일부 껌·캔디류, 고래밥·웨하스·칸쵸·초코송이 같은 과자류 일부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2월부터는 롯데제과가 스크류바·죠스바를 기존 500원에서 600원으로, 월드콘·찰떡아이스·설레임은 1000원에서 1200원으로 인상해 1000원을 넘어서게 됐다. 가나초콜릿·목캔디도 1000원에서 1200원으로 오른다. 빙그레의 경우 메로나·비비빅을 비롯한 바아이스크림 7종과 슈퍼콘 등의 가격을 1000원에서 1200원으로 20%가량 올렸다. 삼다수도 2리터 기준 980원에서 1080원으로 인상해 1000원 미만 제품군도 점차 축소되는 추세다.

직장인 김아무개씨(27)는 “평소 편의점에서 간식을 자주 구매하는데 가격이 눈에 띄게 올랐다”며 “과자나 아이스크림은 대부분 2000원대여서 몇 개 구매하면 1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도 “예전에는 껌, 음료수, 아이스크림, 과자 등 1000원 미만 제품 하면 떠오르는 제품이 많았는데 이제는 1000원 미만의 껌도 몇 종류 안 된다. 삼각김밥도 1000원이 넘는다”면서 “1000원 미만 제품은 전체 편의점 제품의 10%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선두권 식품업체들이 시장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여서 국내 1위 제품들의 잇따른 가격 인상이 전반적인 먹거리 물가 인상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1위 제품이 가격을 올리면 경쟁사들도 잇따라 가격을 올려 소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 CJ제일제당·대상·오뚜기·SPC·롯데제과·해태제과·오리온·농심·삼양식품·팔도·동서식품·남양유업·롯데칠성음료 등 13개 기업 임원진과의 만남에서 “식품 물가는 소비자들이 피부로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물가”라며 “고물가에 기댄 부당한 가격 인상이나 편승을 자제하고,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인상 폭을 최소화하거나 인상 시기를 분산하는 등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정부는 “식품업계의 전년 대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대체로 증가했고 영업이익률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물가 안정을 위한 업계 협조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가격을 올리거나, 한 해 두 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실제 주요 식품기업들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률을 보면,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오리온과 삼양식품을 제외하면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오리온과 삼양식품은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률이 각각 15.8%, 10.6%로 그나마 선방했다. 반면 CJ제일제당은 7.1%, 대상은 4.1%, 동원F&B는 2.2%를 기록했다. CJ제일제당과 대상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포인트, 1.4%포인트 낮아졌고 동원F&B는 0.8%포인트 하락했다. 라면업계 1위인 농심도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률이 1.6%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 3분기 누적 대비 0.3%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SCP삼립과 풀무원도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이 2.5%에 그쳤다.

 

식품업체들, 1위 업체 따라서 도미노 인상

전문가들은 경기불황에 고물가가 이어지는 시점에 기업들이 가격을 올릴 때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원부자재값이 상승했기 때문에 소비자물가가 오르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며 “기업들이 희생하는 자세로 협력업체에 원가를 보장해 주고 소비자에게는 가격을 최소한으로 올리는 책임경영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식음료품은 구매 빈도가 높은데 일부 기업은 1년에 두 번 올리며 소비자의 가계 운영에 위협감을 주고 있다”며 “1위가 올리면 후발주자들이 잇따라 가격을 올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1위 업체가 가격을 올릴 때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가격을 올리는 과정에서 관련 당국에서는 식품업체들의 담합 여부를 관찰해야 한다”며 “가격 인상 분위기에 편승해 소비자들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지 기업들의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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